산사면을 깎아 임도를 내다 보면 어김없이 옹벽이 필요한 구간을 만난다. 절토고가 3m를 넘어서면 사면의 안식각만 믿고 그대로 둘 수 없고, 반대로 성토부 쪽 흙이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구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나가 보면 “여기는 돌쌓기로 될까, 콘크리트를 쳐야 하나” 하는 고민이 그제야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설계 때 토질조사와 진입로 상태를 꼼꼼히 검토했어도, 실제로 굴착해보면 기초지반이 도면과 다르게 나오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돌쌓기·콘크리트·보강토, 셋의 실질적인 차이
돌쌓기옹벽은 현장 발생석이나 인근에서 구한 잡석을 그대로 쓸 수 있어 자재 반입 부담이 작다. 레미콘 차량이 못 들어가는 험한 작업로에서는 사실상 이것 말고 선택지가 없을 때도 있다. 다만 높이가 2.5~3m를 넘어가면 돌 하나하나의 맞물림만으로 토압을 버티기 어려워지고, 숙련된 석공이 없으면 줄눈이 들쭉날쭉해져 몇 년 안에 배부름이 시작된다.
콘크리트옹벽(중력식·반중력식)은 강도와 내구성 면에서는 가장 안정적이다. 문제는 거푸집과 타설 장비, 레미콘 진입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는 점이다. 산 중턱까지 레미콘 트럭이 올라갈 수 없는 구간에서는 소형 믹서로 현장 배합을 하거나 아예 공법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이 판단을 설계 단계에서 놓치면 시공 중에 공정이 통째로 멈추는 수가 있다.
보강토옹벽은 토목섬유(지오그리드)로 성토체를 보강해 쌓아 올리는 방식인데, 시공 속도가 빠르고 대형 중장비 없이도 비교적 높은 단을 올릴 수 있어 최근 임도 현장에서 채택 빈도가 꽤 늘었다. 다만 뒤채움 다짐과 배수 처리가 부실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내부에서 서서히 변형이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배부름 현상으로 터지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보강토옹벽 붕괴 사고 이후 한 단의 높이를 과도하게 높이지 않도록 하자는 논의가 업계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선택 기준은 결국 세 가지로 좁혀진다
현장에서 실제로 공법을 고를 때 따지는 건 결국 높이, 기초지반 상태, 장비 진입성이다. 절토고가 낮고 돌이 현장에서 바로 나오면 돌쌓기가 가장 경제적이고, 높이가 상당하면서 장비 진입이 가능하면 콘크리트가 안전하다. 진입은 어려운데 높이는 확보해야 하는 애매한 구간, 이럴 때 보강토가 대안으로 들어오는 식이다. 세 공법을 놓고 비용만 비교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싸게 먹히는 공법이 그 현장 조건에서 시공 자체가 불가능하면 의미가 없다.
기초지반과 배수, 현장에서 가장 많이 놓치는 두 가지
옹벽 형식을 아무리 잘 골라도 기초가 부실하면 소용없다. 특히 장마철 직전에 급하게 기초를 타설하다 보면 지지력 확인 없이 바로 밑창콘크리트를 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듬해 해빙기에 부등침하로 옹벽 상단이 벌어지는 모습을 꽤 자주 본다. 가을에 착공해서 혹한기를 넘기는 일정이라면 동결심도 아래까지 기초를 내리는 게 원칙인데, 공기에 쫓기다 보면 이 부분이 제일 먼저 생략된다.
배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돌쌓기와 콘크리트옹벽은 물빼기 구멍(배수공)을 일정 간격으로 두고 그 뒤에 자갈이나 부직포로 필터층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장에서 자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필터층을 생략하고 흙으로 메우는 경우를 가끔 본다. 이러면 배수공이 금방 막혀서 옹벽 뒤에 수압이 그대로 쌓이고, 결국 설계에서 고려하지 않은 하중이 작용하게 된다. 보강토옹벽도 마찬가지로 뒤채움 토사의 다짐도와 투수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지오그리드가 제 역할을 못 한다.
실무 체크리스트
공법을 확정하기 전에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절토고와 성토고를 구간별로 나눠 실측하고 도면상 수치와 비교할 것, 레미콘·덤프트럭 진입 가능 폭과 회전 반경을 미리 답사할 것, 시험굴을 파서 기초지반의 실제 지지력을 확인할 것, 배수공과 필터층 시공 여부를 감리 체크리스트에 명시해 두고 중간 검측을 받을 것, 보강토를 쓴다면 단별 높이와 지오그리드 포설 간격이 설계서대로 지켜지는지 사진으로 기록해 둘 것.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준공 후 1~2년 안에 하자가 드러나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옹벽은 한번 시공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물이라 선정 단계의 판단이 전체 공사비와 유지관리 부담을 좌우한다. 화려한 공법보다 그 현장 조건에 맞는 공법이 결국 오래 버틴다는 걸, 몇 번의 보수공사를 치르고 나서야 체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