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를 낼 때 절토사면 처리가 애매한 구간이 꼭 나온다. 암반이 섞여 있어 그대로 깎으면 비탈이 너무 높아지고, 완만하게 눕히려면 산지 훼손 면적이 커진다. 이런 자리에서 요즘 많이 선택하는 게 블록식 보강토옹벽이다. 콘크리트 옹벽보다 공사비가 덜 들고, 레미콘 타설이 어려운 산중 현장에서도 블록을 하나씩 쌓아 올리면 되니 접근성 면에서도 유리하다. 문제는 설계도면에서 계산된 안정성이 현장에서 그대로 재현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보강토옹벽의 안정 계산은 뒤채움흙이 설계 기준대로 다져졌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데, 그 전제가 현장에서 조용히 깨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블록식을 쓰는 이유와 설계가 숨기고 있는 조건
보강토옹벽은 전면 블록과 그 뒤에 까는 지오그리드,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뒤채움흙이 한 몸처럼 작용해야 비로소 설계 강도가 나온다. 지오그리드가 흙을 붙잡는 힘은 흙 입자와 그리드 사이의 마찰과 맞물림에서 나오기 때문에, 뒤채움 재료의 입도와 다짐 상태가 전체 구조의 실제 안전율을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 설계 단계에서는 보통 양질의 사질토나 자갈질 흙을 전제로 안정 계산을 돌리는데, 현장에서는 절토 발생토나 현장 풍화토를 그대로 쓰고 싶어 하는 유혹이 늘 있다. 반입 거리가 멀고 운반비가 만만치 않은 산지 현장일수록 이 유혹은 커진다. 설계서에 재료 기준이 명시되어 있더라도, 실제로 반입된 흙의 입도시험 결과를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뒤채움 다짐, 장비가 못 들어가는 구간에서 생기는 구멍
다짐 문제는 대개 장비 때문에 생긴다. 넓은 평지라면 진동롤러로 충분히 다질 수 있지만, 블록 벽면에 바짝 붙은 좁은 폭에서는 대형 롤러가 들어가지 못한다. 그 자리는 콤팩터나 소형 진동판으로 다지게 되는데, 작업 효율이 떨어지다 보니 층다짐 두께를 지키지 않고 한 번에 두껍게 올려버리는 시공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블록 바로 뒤쪽, 그러니까 지오그리드가 가장 큰 힘을 받는 구간의 다짐도가 설계치에 못 미치는 상태로 남는다. 눈으로 봐서는 멀쩡해 보이고 준공검사도 무난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실이 겉으로 드러나는 시점은 보통 시공이 끝난 직후가 아니라 한두 번의 장마를 겪은 뒤다. 가을에 시공해서 겉보기엔 괜찮다가 다음 해 여름 집중강우를 맞고서야 벽면이 배부르거나 블록 사이가 벌어지는 식으로 문제가 나타난다.
배수가 빠지면 다짐이 멀쩡해도 소용없다
다짐을 제대로 했다 해도 배수를 소홀히 하면 결과는 같다. 보강토옹벽 뒤편에는 통상 자갈이나 부순돌로 된 배수층을 두고, 그 하부에 유공관을 묻어 침투수를 벽체 바깥으로 빼내도록 설계한다. 이 배수 경로가 도면에는 그려져 있는데 시공 과정에서 슬그머니 생략되거나, 배수층 두께가 줄어들거나, 유공관 끝이 제대로 배출구와 연결되지 않은 채 흙 속에 묻혀 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 뒤채움흙으로 미립토가 많이 섞인 재료를 쓰면 배수층 자체가 막혀버리는 경우도 있다. 침투해석을 해보면 금방 드러나는 사실이지만, 배수가 막힌 상태에서 장시간 비가 이어지면 옹벽 뒤편 간극수압이 서서히 올라가고, 이는 옹벽을 미는 힘으로 그대로 작용한다. 실제로 시공 직후 집중호우 기간에 무너진 블록식 보강토옹벽 사례를 다룬 연구에서도 뒤채움 재료의 품질과 당시 설계 안정성, 그리고 지속된 강우가 서로 얽혀 붕괴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어느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설계·기상 조건이 겹쳤을 때 무너진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챙겨야 할 것들
반입된 뒤채움 재료는 포설 전에 입도시험 결과를 받아두고, 눈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층다짐 두께는 장비 종류와 무관하게 설계서에 명시된 수치를 지키고, 벽면 인접 구간은 소형 장비라도 다짐 횟수를 늘려 보완한다. 배수층은 두께와 재료 입도를 도면대로 확인하고, 유공관 말단이 실제로 배출구까지 연결되는지 통수 여부를 직접 확인한다. 우기 전에 시공을 끝내기 어렵다면 임시 배수로를 따로 두어 옹벽 뒤편으로 물이 몰리지 않게 유도하는 것도 현장에서 흔히 쓰는 방법이다. 준공 후에도 첫 장마철이 지나면 벽면 배부름이나 블록 이격 여부를 한 번 더 점검해보는 게 좋다.
결국 보강토옹벽의 안전율은 설계 계산기 안에만 있는 숫자가 아니라, 뒤채움 재료와 다짐, 배수라는 세 가지가 현장에서 실제로 맞아떨어졌을 때만 의미를 갖는 숫자다. 설계도면이 완벽해도 그 전제가 흔들리면 벽은 도면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산림토목 현장에서 보강토옹벽을 다룰 때는 블록을 얼마나 예쁘게 쌓았는지보다, 그 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다짐과 배수가 어떻게 됐는지를 먼저 묻는 습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