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면 받아서 절토부 단면을 들여다보면 늘 똑같은 고민이 생긴다. 암질 구분이 애매한 구간에서 비탈기울기를 얼마로 잡아야 하나, 관행대로 1:1.2 긋고 넘어가도 되는 건가. 임도 공사 현장에서는 이 숫자 하나 때문에 설계 변경이 생기고, 준공 전 감독관이 단면도를 다시 보자고 하는 일이 적지 않다. 절토·성토 비탈기울기는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표2, 임도의 설계 및 시설기준에 토질·암질별로 구체적인 범위가 정해져 있는데, 현장에서는 이 범위를 숫자로만 외우고 왜 그렇게 나뉘는지, 소단을 왜 그 간격으로 넣어야 하는지는 제대로 안 챙기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절토사면, 암질에 따라 숫자가 완전히 달라진다
절토 비탈기울기는 경암 1:0.3~0.8, 연암 1:0.5~1.2, 토사 1:0.8~1.5로 구분된다. 경암에 가까울수록 거의 수직으로 깎아도 버티고, 토사에 가까울수록 눕혀줘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인데, 문제는 현장 지질이 이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다. 풍화암인지 연암인지 애매한 구간이 훨씬 많고, 같은 절토면에서도 깊이가 들어갈수록 암질이 바뀌는 경우도 흔하다. 이럴 때는 설계 단계에서 시추조사나 지질도 자료를 참고하는 게 원칙이지만, 소규모 임도에서는 그런 자료 없이 터파보고 판단하는 일도 많다. 토사 구간은 높이에 따라 소단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어서, 절토고가 높게 나오는 구간이라면 처음부터 소단 계획을 같이 잡아야 나중에 단면을 다시 뜯는 일이 없다.
경험상 가장 말썽이 나는 건 연암으로 설계했는데 실제로 파보니 풍화가 심하게 진행된 토사성 연암이었던 경우다. 설계기울기보다 눕혀야 하는데 이미 절토를 끝낸 뒤라면 되메우기를 하거나 소단을 추가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설계 단계에서 암질이 애매하면 보수적으로 토사 기준을 적용해두고, 실제 굴착 중에 암질이 좋게 나오면 현장에서 기울기를 세워주는 방식으로 조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성토사면은 암질이 아니라 지형과 용수가 변수다
성토 비탈기울기는 1:1.2~2.0 범위에서 지형과 용수 조건 등을 고려해 정하도록 되어 있다. 절토와 달리 암질 구분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쌓아 올리는 흙은 전부 다져진 흙이라 안정성이 지반 자체의 암질보다는 함수비, 배수 조건, 다짐 상태에 더 좌우되기 때문이다. 계곡부를 가로질러 성토하는 구간이나 용수가 흐르는 곡간부는 같은 1:1.5 기울기라도 건조한 산비탈보다 훨씬 불안정해서, 설계할 때 이런 지형 조건을 반영해 기울기를 더 눕히거나 배수시설을 보강하는 게 맞다.
특히 성토사면 길이가 5m를 넘어가면 옹벽이나 석축 같은 구조물을 설치하도록 정해져 있다. 현장에서는 이 기준을 성토고가 아니라 사면의 경사면을 따라 잰 길이로 적용해야 하는데, 가끔 수직높이로만 계산해서 5m를 넘기는지 안 넘기는지 헷갈려하는 경우를 본다. 경사길이로 재면 수직높이보다 당연히 더 길어지니, 애매한 구간은 보수적으로 구조물 설치를 검토하는 쪽이 안전하다. 장마철 직전에 성토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서두르다가 다짐이 부실해지는 경우도 현장에서 자주 생기는 시행착오인데, 비가 한 번 크게 오고 나면 사면 발이 패이거나 유실되는 걸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소단, 2~3m마다 50~100cm를 넣는 이유
소단은 사면 길이 2~3m마다 폭 50~100cm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단순히 규정이라서 넣는 게 아니라, 긴 비탈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의 유속을 끊어주고 낙석이나 토사가 한꺼번에 하단까지 굴러 내려가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소단이 없는 긴 사면은 겉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몇 번의 집중호우를 겪으면 표면유실이 누적되면서 결국 전체 사면이 흘러내리는 식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흔히 하는 실수는 소단 폭을 규정 하한선인 50cm로 바짝 맞춰서 시공하는 것이다. 설계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나중에 유지보수 때 소형 굴착기나 예초 작업자가 올라서기엔 너무 좁다. 소단에 배수로를 같이 내야 하는 구간이라면 처음부터 폭을 넉넉하게 잡아두는 게 낫다. 소단 배수로가 빗물을 모아서 횡단배수구 쪽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소단 자체가 또 하나의 작은 저수지가 되어 침투수를 늘리는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설계·시공 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
절토·성토 단면을 그리기 전에 다음 항목들은 한 번씩 짚어보는 게 나중에 설계 변경을 줄이는 길이다.
절토 구간은 암질조사 자료나 인접 구간 시공 사례를 참고해 암질 구분의 근거를 남겨둔다. 애매한 구간은 보수적으로 토사 기준을 적용하고 현장에서 조정할 여지를 열어둔다. 성토 구간은 경사면을 따라 잰 길이로 5m 초과 여부를 판단하고, 초과하는 구간은 옹벽·석축 등 구조물 설치 여부를 설계 단계에서 결정한다. 용수가 있는 계곡부나 지하수위가 높은 구간은 배수시설과 연계해 기울기를 보수적으로 눕힌다. 소단은 규정 하한선이 아니라 유지관리 접근성까지 감안한 폭으로 잡고, 배수로와의 연결 여부를 단면도에 같이 표기한다. 노체는 암반지역을 제외하고 정지 완료 후 진동로울러로 다지는 게 원칙이고, 진동로울러 진입이 어려운 구간에서만 단단한 토질을 전제로 불도저나 궤도식 굴착기로 대신할 수 있다는 점도 시공계획서에 명시해두면 나중에 감독 과정에서 불필요한 질문을 줄일 수 있다.
비탈기울기는 결국 숫자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암질과 토질, 지하수와 배수, 소단의 폭과 연결 상태까지 한 세트로 엮여 있어서, 어느 한 요소만 기준에 맞추고 나머지를 관행대로 처리하면 꼭 어딘가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다음 임도 설계를 앞두고 있다면 절토고와 성토고가 애매한 구간부터 먼저 짚어보는 걸 권한다.